1868년 조선말, 독일의 상인 오페르트는 두차례에 걸친 통상을 거부당한 뒤 조상의 시신을 신성하게 모신다는 조선인들의 관습을 이용할 마음을 먹고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시도한다. 이는 결국 미수에 그치게 되지만 '서구인은 믿을 수 없다'는 흥성 대원군의 신념을 강하게 굳히게 되면서 종국에는 '쇄국정책'에 박차를 가하게 만드는 사건 중 하나가 된다. 조선 역사 500년 동안 뿌리깊게 박혀있던 성리학의 '효(孝)'라는 가치를 건들인 것이니 우리는 여기서 대원군의 분노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관광으로 달에도 간다는 21세기, 유교의 교조화가 청산되고 있다는 바로 오늘날에서도 마치 흥선대원군의 것과 같은 엄청난 분노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네티즌들의 연예인들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싶다.

 

 

두 번 광고출연 했다가는 사람 잡겠네

 

우리나라에는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정해진 논쟁하면 안되는 대상 몇개가 있다. 군대, 종교, 정치. 대한민국에서 그 세가지를 잘못 건들이면 공자 할아버지라도 살아남기 힘든다. 말 그대로 '가루가 되게 까인다'. 그런데 얼마 전 한 포탈사이트에서 한 여자 연예인이 네티즌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바로 금단의 영역인 '군대'를 '건드렸다'는 이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미니홈피는 이루말할 수 없이 처참하게 난도질되어 차마 눈뜨고 보기가 안타깝다.

 

 

 

 

욕먹을 짓 한 '광고' 그리고 '이민정'...?

 

글쎄, 나 역시 그녀가 출연한 광고가 네티즌들의 말처럼 '병맛'인 것은 확실히 동의하는 바이다. '이름'조차 없이 군번과 같은 '숫자'로 개인을 나열하는 이 비인간적인 군대라는 곳에 국가로부터 강제로 '징용'되는 역사상의 비극을 보며 '축하'한다는 표현을 쓰는 이 넋 나간 광고, 거기다 '정신 좀 차리겠구나'라니? 이것의 의도가 애초에 무엇이든간에 불순해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왜 이 '병맛' 광고때문에 이민정이라는 연예인이 욕을 먹는지는 조금 납득하기 어렵다. 보통의 연예인이 광고를 촬영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결정권을 쥐고 있을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그러한 권한이 모든 연예인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욱이 이민정과 같은 신인 여배우라면, 처음부터 광고 선택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더욱 낮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여배우가 이토록 욕을 먹어야 하는가?

 

다만, 나에게도 그녀를 좀 다그치고 싶은 것이 한가지 있다면 단지 '노래는 본인이 자원해서 부른것인가?'하는 정도 뿐인데 말이다.

 

              <출처 : 이민정 싸이월드>

 

왜 모든 분노의 집중은 연예인에게 가는가

 

설사 그녀가 광고 콘티를 꼼꼼히 볼 기회가 있었고, 그녀 스스로 만족한 광고였다고 쳐도, 네티즌들의 몇몇 수위를 넘은 비난은 아직까지 인과관계가 부족해 보인다. 광고를 선택한건 이민정 자신일지라도 이 광고의 탄생은 카피라이터, 광고주, 광고 기획사 모두의 합작이다. 그들도 물론 '까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수준이 이 가련한 신인 여배우에게 가해지는 온갖 원색적인 말들의 '테러'만큼은 아니다.

 

이것은 비단 이민정이라는 연예인에 한정된 일은 아니다. 일단 네티즌들에게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그때부터는 진위와 상관없이 집단가해가 이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이것은 명백한 '아래로의 폭력'이다

 

연예인들이 부와 명예를 갖추었다고 우리보다는 조금 더 '위'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말자. 이것은 연예인 자신들도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다. 조금 '싸가지' 없게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의 극단까지 달리고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연예인'이란 명백히 자신이 가진 '엔터테이닝'을 사고 사고파는 일종의 서비스업에 불과하다. 연예인들은 자신을 팔고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어 먹고 산다. 손님은 '왕'이다. 따라서 하늘이 두쪽나고 예수가 재림한다 할지라도 네티즌으로 명명되기도 하는 구매자인 대중들은 언제나 연예인의 '상전'쯤 되는 셈이다. 커다란 대기업에게도 '불매운동'은 치명타이듯이, 대중이 '관심'을 인질삼아 봉건시대처럼 연예인들을 구속하기 시작하면 그 것은 그들로서는 저항하기조차 두려운 명백한 '아래로의 폭력'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연예인에겐 복지마저 열악하다. 故장자연을 잊었는가. 톱스타만 연예인인것은 아니다. 아직도 연예가에는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를 많이 갖추고 있다. 인권보호수준은 더 처참하다. 故최진실을 잊었는가. 톱스타도 안전하지만은 않다.

 

 

 

까지 말자는게 아니고 좀만 '덜' 까자

 

앞서 내가 주장하고 자 하는 바가 '아예 까지 말자는거'냐고? 또 그렇게 이해하면 섭섭하다. '좌파 축출'한답시고 멀쩡한 사람들을 죽일듯이 까는게 일인 호도전문 조선일보도 살아있는데 우리라고 왜 못하랴. '깔권리'는 존엄하며 누구에게나 있다. 게다가 잘못하는 것을 까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노' 하기 전에 숨 한번 고르고, 어쩌면 저지른 잘못보다 '유명'하다는 죄때문에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을지도 모를 연예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는건 어떨까? 그들도 '연예인'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면 단지 우리와 똑같은 명의 인간에 불과한데 말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일탈'이나 '루저'와 같은 키치한 코드가 유행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에선 자신을 감추고 '악플'을 다는 행위가 만연하다. 갈수록 살기는 퍽퍽해져가 스트레스는 점점 느는데 그것의 배출구는 마땅하지 않은 게 현대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예인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분노'하는 행위 역시 어느정도 그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사회에서 '약한 놈'이 진짜 '강한 놈'에게 '분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고 그래서 '우리'라는 약한 놈은 '연예인'이라는 또 다른 약한 놈을 본능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구한말 조상의 묘를 파헤친 범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되는 연예인들에 대한 그 극렬한 분노가 만들어내는 끓어넘치는 관심을 정치가나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부조리에게 돌려보는건 어떨까, 하고. 우리가 '진짜 강한 놈'에게 '분노'하는 방법을 다 잊어 버리기 전에 말이다.

 

그러한 분노야 말로 당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이겨냈던 '건전한 민중의 건전한 분노'이자, 우리사회를 윤택하게 만들수 있는 또 하나의 '힘'이 되지 않을까?